시골에서 아이 키우기



 2714 2012/04/13 (00:52)
 지기아내 ,  37,       (119.205.***.***)
   시골에서 아이 키우기(7년 전 글에 대한 피드백)

아주 가끔 이곳에 와서 글을 읽고 나갔었죠.
어제밤 와서 다시 주루룩 읽다보니 "17세" 표지가 달라져있더라구요.
명색이 "17세" 써포터즈였는데...그것도 모르고...
죄송해요ㅠ.ㅠ

어제는 로긴을 할까말까 하다가 안하고 나갔더니 오늘 먼저 전화주셔서 죄송했어요.
어제 홈피 온김에 소식 먼저 전하고 나갔어야 하는데...
전화하실 때마다 힘주시는 말씀 해주셔서 늘 저를 분발하게 만들어주시네요.
언제나 감사드려요.

조금전 로긴하는데 살짝 떨렸어요.
너무 오래동안 로긴을 안해서 혹시나 정리됐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잠깐 들었거든요.
첫 시도에서는 실패. 최근에 사용하는 비밀번호를 무심코 입력했더니 틀렸다고 나온거였는데,
조금더 떨렸더랍니다.
두번째 로긴에 성공해서 이렇게 일사천리로 입력중....
아직 정리하지 않아주셔서 감사+감사합니다.

제가 아래 글을 바로 이 게시판에 쓴게 벌써 7년 전 일이더군요.
그때 말미에 5년후를 기대하시라고 적었었는데, 5년을 훌쩍 넘어 7년이 되어가고 있는 시간...
시간이 참으로 빨리 흘렀어요. 아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어서 7년전 글과 함께 아들 소식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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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9일 바로 이 게시판에 써놓았던 글(예전글 보기로 하면 찾아질걸요????)


시골에서 아이 키우기



컴퓨터로 작업할 일이 많아 내내 집안에만 머물다가 오늘 시간을 내어 큰아이 합창경연대회엘 다녀왔습니다. 비가 퍼붓는 시골 길을 자동차로 한 시간이나 달려야 했으니 꽤 먼 곳에서 대회가 열린 것이죠.

"제5회 한마음 노래부르기"라는 대회의 평창군 지역예선 형태였는데, 우리 아이가 포함된 횡계초등학교 합창단이 최고상을 받았습니다. 시상식에서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바로 다음달에 있는 강원도대회에 평창군 대표로 나가야 하는 관계로 어른(?)들은 모두 기쁨반 걱정반입니다. 연습시간이 이미 너무나 많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평창군은, 강원도 대부분의 군,면이 그렇듯이, 계속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곳중의 하나입니다. "개인" 참가 형태가 아니고 "단체" 참가의 대회에는 출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학생수가 적은 학교가 아주 많은 실정입니다. 오늘도 겨우 5개 학교만이 출전을 했는데, 노래를 잘 하는 아이들을 선발해 합창단을 조직한 형태가 아니고 대부분 해당 학교의 4,5,6학년 전 어린이가 나온 경우입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횡계초등학교는 시골학교 치고는 그래도 학생 수가 많은 편인데, 많다 해도 3백명이 채 안됩니다. 모든 학년이 다래반, 머루반 두 개 반씩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래서 전교 6개 학년에 모두 합해 12학급이 있습니다.  3백명쯤 되는 어린이들은 대부분 얼굴과 이름과 가족 계보까지도 서로 서로 알고 지냅니다. 누구의 동생이고, 누구의 오빠고 언니고, 집에서는 무슨 가게를 한다는 것(이곳은 용평리조트라는 곳을 배경으로 탄생된 동네여서 장사를 하는 집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쯤은 다들 꾀고 있습니다.

학생 수가 적다보니 선생님들도 전교생을 거의 다 알고 지냅니다. 선생님들은 자기 반 아이들 얘기는 물론이고 남의 반, 아니 남의 학년 아이들의 이야기로 하루종일 꽃을 피웁니다. 선생님들은 누가 책을 많이 읽고, 누가 달리기를 지독히 못하며, 누가 말썽쟁이고 누가 글짓기 솜씨가 좋은지 훤히들 알고 계십니다. 하물며 영양사 선생님까지 아이들 이름을 줄줄이 외고 있어 편식을 하는 아이들은 이름까지 부르며 호통을 치곤 하십니다.

보통 근엄함의 대명사인 교장 선생님도 이곳에서는 정말 친근한 동네아저씨 같습니다. 매일같이 놀러와 교육상담을 받고 가라는 덕담을 날려주시는 교장실에 냉큼 들어가 어머니들 역시 천연덕스럽게 수다를 떨곤 합니다.  한마디로 가족 같은 학교라고 할 수 있죠. 서울에서 전교생 4천여 명이 되는 학교에서 아둥바둥 경쟁하며 지내던 우리 아이에게는 가히 충격이랄 수 있는 변화였지만 우리 아이는 요즘 그 변화를 충만히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학 온 아이는 전교회장에 뽑히지 않는다는 관례를 깨고 6학년이 된 올 봄 당당히 전교회장에 선출된 우리 아이는 지금 한창 상종가를 치고 있습니다.  학교의 각종 상도 많이 타지만 그것보다 학교를 대표하는 여러 대회에 참가하여 "일당백"이라는 칭송을 아낌없이 듣습니다. 공부 하느라 코피가 터지는게 아니라 각종 대회 나갈 준비하고 연습하느라 코피가 터집니다. 첫 대회에 나갈 때보다 두번 째, 세번 째 대회는 훨씬 수월해합니다. 훨씬 자신있어 합니다. 그래서 그 자신감이 어느새 아이의 실력이 됩니다.





학교 통학 문제도 걱정이 없습니다. 집 앞까지 노란 스쿨버스가 와서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가주고 하교길에는 집까지 또 데려다줍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자연선생님 수준인 기사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잘 해주는지, 아이들은 또 재잘재잘 얼마나 재밌거리가 많은지 노란 스쿨버스의 추억은 학교에 다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됩니다.


시골에서 아이 키우는게 이렇듯 크게 힘이 들지 않건만은 사람들은 다들 걱정스런 눈빛으로 아이들 교육은 어떡하려고 이렇게 시골로 내려왔느냐고 묻습니다. 물론 학력수준은 많이 떨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아무리 고공비행(?)한다 해도 서울의 변두리 학교 아이들보다더 더 학력수준이 떨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학년이 높아질수록 점점 그 차이가 커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시골행을 결심한 부모의 경우, 외부 교육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에 의존하기 보다는 아이들 교육에 직접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다고 가정해보면 그 실력차는 부모의 힘으로 어느 정도 메꿀 수 있으리라 여겨지기도 합니다.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노력해도 메꿀 수 없는 모종의 갭조차도 이런 성취와 커다란 희열로 대치시킬 수 있을거라고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 1등이라는 희열, 자신을 감히 "최고"라고 느끼는 그 희열이 아마 아이의 전 인생을 지배하고, 1등의 그 달콤한 맛은 달콤한 유혹이 되어 살아가는 내내 자신을 현명하게 채찍질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5년후쯤에도 이 게시판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면 오늘의 소회가 정녕 바람직한 것이었는지, 땅을 치고 통탄해야할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쓸 기회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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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축구 실컷하고도 민사고·美 명문대… 귀촌(歸村) 소년의 반란






소년을 美프린스턴대로 보낸 건 과외 아닌 '의지'였다

30대 대학교수와 대기업 팀장 부부가 초등학교 4학년·1학년 남매를 데리고 강원도 평창으로 귀촌(歸村)했다. 서울 강북 아파트(106㎡·32평) 판 돈 2억원에 노부모 인천 아파트까지 팔아 모두 3억을 마련했다. 전나무 가지가 눈(雪) 무게에 뚝뚝 부러지는 대관령에 살림집 한 채, 펜션 한 채를 지었다. 주위에서 다 말렸다. "남들은 교육 위해 서울로 올라오는데, 당신들은 무슨 배짱으로 거꾸로 가느냐."

그로부터 9년 만에 이집 장남 이택윤(19)군이 전교생 200명 남짓한 강원도 횡계초등학교·도암중학교를 거쳐 지난달 30일 미국 최고 명문 중 하나인 프린스턴대학에 전액 장학금 받고 합격했다. 컬럼비아·듀크·브라운·UCLA 등 다른 명문대 9곳에서도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홍콩대도 전액 장학금을 제안했다. 어머니 백은희(48)씨는 "많이 벌어 많이 쓰고 바쁘게 사는 인생 대신 적게 벌어 적게 쓰고 느리게 사는 인생을 선택했다"면서 "아이들 꼭 학원 돌리지 않아도 된다, 남보다 느리게 살아도 남들만큼 이룰 수 있다는 '본보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서 중상위권였던 평범한 아이

아들 이군은 전교생 1000명 넘는 서울 강북 초등학교에서 중상(中上) 정도 성적이었다. 한글은 6살에 뗐고, IQ는 130 안팎이었다. IQ가 좋은 편이지만 부모 눈에나 교사 눈에나 번뜩이는 수재가 아니라 그 또래에서 조금 우수한 개구쟁이 중 하나였다. 이군은 "서울 학교 다닐 땐 학교랑 집 오간 기억, 태권도 학원 간 기억뿐 이렇다 할 추억이 없다"고 했다. 시골 내려온 뒤 이군은 날마다 해 기울도록 학교 앞 개울에서 입은 옷 그대로 물장구 쳤다. 이군은 "축구 정말 원없이 했다"고 했다.



귀촌한 뒤 9년 동안 어머니 백씨가 펜션 살림을 맡고, 아버지 이성호(48)씨가 한시(漢詩) 공부하며 아이들 공부를 봐줬다. 이군은 "게임도 재밌지만 게임 말고도 놀 게 많으니까 거기 빠져 살진 않았다"고 했다.

놀다가 갑자기 공부에 빠져

그 러던 이군이 중2 여름 별안간 맹렬하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평창이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러시아 소치에 고배를 마시는 바람에 온동네가 울화통을 터트렸다. 이군이 분루를 삼키며 "안되겠다. 내가 직접 IOC 위원이 돼야겠다"면서 민족사관고등학교에 가겠다고 나섰다.

일주일에 사흘은 방과후 면소재지 보습학원에 갔다. 나머지 사흘은 시외버스 타고 강릉 영어 학원에 갔다. 인터넷 강의 찾아 듣고 동네 필리핀 주부에게 영어회화를 배웠다. 가장 사교육비를 많이 쓸 때도 월 50만원 안팎이었다. 2009년 이군이 평창군민 최초로 민사고에 합격하자 동네 사람들이 "인물 났다"며 플래카드 걸고 좋아했다.

이군은 방학 때는 해외 캠프 대신 횡계초·도암중 친구들과 함께 '안티보이스피싱 봉사단'을 만들어 강원도 경로당 60여곳을 돌아다녔다. 할아버지·할머니들에게 피해 사례 동영상을 보여주고, 대처법을 쓴 팸플릿 2500부를 만들어 나눠줬다. 제작비 200만원은 강원도에서 나온 지원금과, 단원들이 코가 빨갛게 얼도록 눈꽃축제에서 눈사람 관리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충당했다. 이군은 이때 경험을 살려 "의지를 갖고 행동하면 세상이 밝아진다"는 내용의 작문을 프린스턴대학에 냈다.

어머니 백씨는 "서울 살 때 생각하면 아침부터 밤중까지 시간 없어 동동거린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 서울 살 땐 돈으로 아이들을 키웠던 것 같아요. 사람 써서 아이들 돌보고 학원에 보냈죠. 귀농·귀촌을 꿈꾸면서도 교육 때문에 결심 못하는 분이 많은데, 직접 살아 보니 요즘은 시골도 교육 여건이 좋아요. 아이들을 학원에 덜 보내도 덜 배운 그 시간만큼 책 읽고 공 차며 풍요롭게 자라요."




평창=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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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리왕 축하축하~
오늘 페북에 조선일보 기사 올렸는데 ㅋ
지기아내 붕어빵 아들 화이팅!!!
딸도 기대만빵임. 장하다 지기아내~~~~~~~~~~~~~~~~~~
  (2012-04-13 오전 1:55:) IP:125.128.***.***
  
 




http://www.rootlee.com/toron/view.asp?id=2714&cpage=1




by 고유념자각애 | 2012/05/31 10:33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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